본문 바로가기
일상

하드웨어 Pre-Maintenance

by oneday_Jung 2019. 11. 7.

1. 한창 우울하던 때에는 육체가 날 현실에 옭아매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마치 정신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가 서로 대립되고, 차원적으로 대등하기라도 한 것인 양. 지금은 정신이 육체에 종속된다는 현실세계의 서열을 받아들이고, 유물론적 세계관을 착실히 구축해가고 있다. 그러고 나니 어떤 정신적인 무력감은 커진 것도 같지만, 역설적으로 많이 편해졌다. 정신보다는 물질이 훨씬 단순명료하고 아웃풋이 바로 눈에 보이니까. 퍼포먼스 구린 하드웨어 위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는, 암만 훌륭해 봤자 현실에 그다지 영향력을 가질 수가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기적'이라 불릴 것이고 종교의 영역으로 들어가겠지.

2. 갑상선 항진증 가족력도 있고, 요즘 자꾸 살이 좀 빠져서 산부인과에 호르몬 검사를 받으러 갔다. 난임클리닉이 같이 있는 곳이었다. 충분히 복작이는 지구에서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가지고 싶어한다는 사실은 늘 신기하다. 아마 어떤 삶의 보람, 행복, 성취를 갖고싶은 것이리라 짐작하지만, 아이가 정말로 그런 존재일지는 잘 모르겠다. 하드웨어 기본 탑재 기능이라고 꼭 써 볼 필요가 있는 건 아니다.

3. 치과 하반기 검진했다. 작년 상반기에 때웠던 17번 어금니 재료가 그새 일부 떨어져 나갔다고 했다. 이를 악무는 습관 때문인 건지, 씹는 힘이 강한 건지 해당 어금니 자체도 나이에 비해 많이 닳았다며, 인레이를 하는 걸 추천 받았다. 100세 시대에 벌써 이러면 늙어서는 어떡하나 싶다. 인레이는 한 번 하면 10년 정도 간다고 한다. 가격은 30만원 정도.

4. 고독한 미식가 놀이에 맛들어서 계속해서 잘 먹고 다닌다. 동네 밥집에 요즘 들어 부쩍 혼자 자주 갔더니 주인 아주머니와 좀 친해졌다. 가게 들어서면 서로 눈빛 교환하고, 잘 되는 가게라 바쁘실 텐데도 나 체크하며 반찬 리필 얘기하시고 그런다. 오늘은 좀 더 작은 사이즈의 샐러드 접시를 새로 샀다며 자랑하셨다. 보통 2인에서 8인 이상 단체 손님까지도 오는 가게라 샐러드 보울도 큼직해서 1인분 주문 시에는 조금 과한 사이즈였는데, 이제는 알맞다. 신경써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고 좋다. 

5. 어젯밤 모기와 사투를 벌이다가 이런 생각을 하며 그냥 포기하고 잤다. '먹으려면 먹어라. 귀찮고 가려워지면 좀 어때. 쟤도 살려고 참 고생이구나. 내 피를 필요로 해준다니 어떤 점에선 차라리 고맙기도 하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 <침묵의 기술>  (0) 2019.12.01
소셜미디어  (0) 2019.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