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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도서 <침묵의 기술>

by oneday_Jung 2019. 12. 1.

 

포브릿지 독서모임을 통해 18세기 프랑스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신부의 저서인 '침묵의 기술'이라는 책을 알게되었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에서 ‘없음’은 부족함이 아니라 ‘있음’과 동등한 하나의 세계라는 구절이 와닿았던 기억이 있어 흥미를 자극했다. '침묵의 기술'은 당대 유물론과 무신론적 자유사상으로 인해 말과 글이 과장되는 시류를 비판한 책으로, 현대 기준에서 걸러 들어야 할 필요는 있지만 여전히 유효한 측면이 있다.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는 퍼거슨 감독의 말이나,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기)' 같은 신조어와 시사하는 바가 결국 같다. 사리분별 제대로 해서, 비생산적인 언행은 차라리 하지 말라는 거다. 


물론 지나치게 엄숙하고 꼰대 같은 면도 있다.

사람들의 웃음과 행복이 신성모독으로 이어진다고 믿은 이 가상인물이 생각났다.

영화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사제 ‘호르헤’

1. 말의 목적성과 정확성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앞 쪽 파트도 좋았지만, 글쓰기에 대해 주로 다룬 뒷부분은 특히 대학 시절을 떠올리며 재밌게 읽었다. 문헌정보학과를 다녔던 대학생 때의 나는, 도서관 사서의 정체성을 쌓아가면서 쏟아지는 출판물들 중 도서관에서의 존재 가치가 있는 책(도서관의 목적에 부합하고, 문헌적 가치가 높으며, 이용자의 수요가 높은) 을 선별하고, 그 목록을 정제할 방법에 대해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나는 결국 사서가 되지 않았으므로, 사서의 시각이 아닌 지금 나의 시각 - 즉 블로그에 글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입장을 바꾸고 보면 실로 뼈아픈 팩트폭력을 선사하는 책이 아닐 수 없다. 블로그에 시답지 않은 글을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리는 내 지극히 개인적인 글쓰기 방식은 자기만족과 잉여력 충족을 위한 것일 뿐, 도무지 생산적인 구석이라고는 없기는 하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개개인이 가볍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수치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보를 생산하는 일이 누구나 언제든 할 수 있는 쉽고 가벼운 일이 되었기도 하고, 나는 평범한 현대인이지 18세기 유럽의 성직자라는 막대한 책임을 지닌 지식인도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창조성을 품고 있고, 타인을 필요로하는 사회적 존재이니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쓸 땐 써야하며, 그런 연습과 시행착오들이 모여야 언젠가는 괜찮은 글을 세상에 '발표'할 만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

2. 세상에는 귀중한 컨텐츠가 정말 많지만, 잘못된 지식을 재생산하는 가짜뉴스, 유사과학, 반지성주의를 퍼뜨리는 사이비 컨텐츠 역시 많다. 건전한 사회를 바라는 시민으로서, 잘못된 정보에 피해입지 않으려는 개인으로서 그것들을 분별해야만 한다. 바이럴 마케팅을 위한 글들, 노골적인 광고, 개인들의 감정의 배설물들도 범람한다. 모두가 자기 상품, 자기 얘기를 들어 달라 외치며 인지적 자원을 침범해오니 피로감이 상당하다. 이에 대해 '무시의 침묵'을 잘 행사할 수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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